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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궁금하지 않은 일상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간 시간 part.1 (첫 심리 상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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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 운동화

 

처음 경험해 보는 강남 우리 심리 상담연구소에서의 심리 상담을
한 달 하고 조금 넘게 총 6회 진행했다.
심리 상담 첫날 상담사님과 가벼운 인사를 하고
직업, 나이, 가족 사항 등을 적어나가며 나를 기록했다.
첫날엔 그냥 가벼운 물음에 답을 하는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졌다.
편안한 인상과 차분하게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는 상담사님은 여성스러움 자체였다.
말투도 과하지 않고 부드럽게 받아주셔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그냥 편한 언니를 만나서 카페 온 듯한 느낌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처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내 마음속 인간관계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고 과거로 돌아가니
어릴 때 나를 착하다고 우습게 생각하고 이용하려던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를 이용하려던 친구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착해서 내가 당했다는 생각에 피해의식이 생긴 것 같다.
그때 생긴 피해의식은 다른 누군가와 친해졌을 때 나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반반 나누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내가 주고 싶은 마음에 주고도
내가 준 만큼의 무게를 항상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을 언제고라도 채워주지 못하면
서운해하거나 삐쳐서 그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나타나곤 했었다.
그만큼 받고 싶은 보상심리가 생긴 건
그래, 그 어린 날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 인 것 같다.
내가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보니
그 끝엔 어릴 때의 트라우마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벽

 

이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감정 표현 고자다..  

이런 나의 성향은 인간관계를 성숙하게 하지 못하게 됐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표현에 서툴다. 

그나마 요즘의 나는 혼자인 시간이 많아져 나에 대해 돌아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주 생각하려고 하다 보니 

지금은 많이 나를 표현하고, 깊은 내면을 꺼내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10/3 정도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만난 심리 상담에서는 가족의 이야기를 물어보셨고
나는 우리 가족의 조직도를 설명하는 중에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무책임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엄마는 와중에 우리 집의 가장이자 우리 집을 일으켜 세운 (아직 일어섰다고 할 순 없지만..)
집안의 경제력이자 기둥, 그리고 정신적 지주라고 설명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외가 내력의 단단하고 곧은 심리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멘탈이 집안 내력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외가 식구들은 성격이 다들 좋으시고 긍정 파워에
어떤 힘든 일이 와도 허허허 웃으며 흘려넘기는 성격,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은 하지 않으며 트러블을 만들지 않았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제각기 타격감이 다르지만
외가 사람들 특히 우리 어머니는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멘탈이 흔들림 없이 강하셨다.
그렇게 슈퍼우먼인 어머니라고 이야기하고 나니, 상담사님이 나지막이 물어보셨다..

아 어머니는 강인하신 분이군요, 근데 정말 그렇게 강하시기만 할까요?

 

 

흑백 이미지

 

응? 그 말에 그냥 갑자기 머리를 때려 맞은 듯 멍해졌다.


울 엄마는 할머니의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었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으셨을 거다.

분명히 되고 싶은 사람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런 삶이 이어지다 보니 흘러가는 대로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게 마음이 편하셨을 것이고 그렇게 살아오셨으리라..
어머니랑 진득하게 이야기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지난번 카페에서 어머니가 처음으로 말문을 틔었을 때도
엄마가 공부를 잘해서 학교를 너무 가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한이 맺혔다는 말..
얼마나 원이 됐으면 그 말 이후로는 또 입을 닫아버리셨다..

그렇지, 우리 엄마도 처음부터 그렇게 의연하고 강인하신 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힘들었던 나날들이 엄마를 강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게 만들었을 거고 

엄마는 그렇게 온몸으로 때려 맞으면서 철인이 되어갔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아릿아릿해진다.   

그렇게 많은 생각이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아, 생각해 보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엄마에게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표현을 하는 게 서투르다는 표현도 무색하게 본인의 이야기는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울 엄마는
사람들과 대화할 줄을 몰라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일만 하고 살아오셔서 표현을 못 하시고
저희한테조차 표현을 해준 적이 거의 없어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눈물이 울컥 날뻔했다.
그냥 하루하루가 얼마나 빠듯했을까.
엄마라고 딸자식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주고 손잡아 주고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라며 따뜻하게 묻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말 한마디 건넬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숨 쉬며 일하기 바빴던 나날에서의 감정 표현은 사치였을 것이다.

 

"그런 엄마와 똑같이 저도 그렇게 감정 표현을 못 하면서 자랐어요.
내가 어떤 감정이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른 가정에서는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서,
그나마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요즘 표현을 조금씩 하는 것 같아요”
라고 이야기했다.
”아아 감정 표현을 잘 못해서 더 사람들과 부딪히는 걸 힘들어하고,
그런 어려운 상황이 없을 때 도망가거나 손절매하려고 하시는 것 같군요”라고 짚어주시는데
역시나 문제점은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애초부터 부족했던 부분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잘 보이고 미완성된 인격체로 보여 완벽하려고 하는 나를 

자꾸 스트레스를 주며 조사 대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나는 너무나 여유가 없어져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데로만 하고
손절매하려고 한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돌아봤다.
관계망에서 내가 걸리적거리는 그 사람을 내 안에 두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 놓아두라는 상담사님의 말이 와닿았다.
왜 내 사람과 아닌 사람 꼭 두무리로 갈라놓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의 나는 엄격한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해버리고 벽을 치고 선을 긋는다.
그리고 나와 결이 맞지 않거나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냥 그 사람은 내가 앞으로 만나지 말아야지라고 선을 그어버린다.
그런데 날 불편하게 해서 내가 편하자고 손절매한 사람들이 최근에 꿈속에서 그렇게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러니한 게 그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이 꿈속에서는 항상 좋았던 사람들처럼 하하 호호 웃으며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나 맛있는 걸 먹고 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아
요즘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카톡 프로필도 뒤적거려본다.
손절한 관계의 찝찝함이 나의 깊숙한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상담사님도 동의했다. 굳이 손절이라 생각하고 벽을 친 나에게만 오는 감내인 것이다.
그들은 나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러니 그냥 두라고 하신다.
그냥 그들은 그 자리에 두고 나도 굳이 끊어내지 말고
기분 좋은 관계를 유지하되 맞지 않으면 조금씩 자연스럽게 멀어지라고..
그렇게 좋은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면
찝찝한 마음은 없어지고 어렴풋하게나마 좋은 기억만 있을 거라고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셨다.

 

정말 짧디짧은 내 생각을 물고 늘어져주셔서
이렇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고 내가 너무 큰 깨달음을 얻어,
오늘 하루는 정말 귀하디귀했고 오늘의 1시간 30분이 앞으로 내 인생을 크게 바꿔주고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게 해주어 인간관계를 현명하게 이끌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걸까? 내가 왜 그런 걸까?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치부하며 지나쳤던 부분들을
내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중요한 포인트에 질문을 던져주시는 것만으로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하며 되짚어가보니 항상 문제의 뿌리는 내 안에 있었고,
그 결정적인 계기들이 있었던 것이다.

 

상담을 받지 않았으면 그냥 막연하게 느끼고 평생 살았을 부분들을 짚어주시고 일깨워주셔서
내가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고 이해하는 순간 나에게 너무 애틋해지면서,
그래서 내가 이렇게 변했고 나라며 나에 대한 아량이 넓어지며
이해를 해줄 수 있는 마음의 틈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래 진아야 네가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고 내가 해본 적이 없어서야. 

그만큼 힘든 환경에서도 너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신 부모님들에게 감사하고, 

네가 앞으로 더 많이 표현하며 고쳐가면 되는 일이야. 

 

그래 진아야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는 건 

네가 인간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라 피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도망가고 자른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어. 너만 스스로 고립될 뿐이야.  

앞으로 슬기롭게 싸울 방법을 찾고 더 현명한 인간관계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진아야 네가 사람들에게 계산적으로 변한건 

어릴 때 착한 너를 이용하려고 했던 몇몇 철없던 어린아이들 때문이야. 

너도 너를 지키려고 변한 거야. 

그게 나쁜 건 아니야. 

앞으로 더 많이 베풀며 살아가면 돼.

 

너는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많으니까 

너무 엄격한 잣대로 모든 면에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부족한 너도 너이니 그냥 못났지만 착하기는 한 나 정도로 받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원하는 게 무언지만 계속 생각하고, 

반성하며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자.. 

 

지금의 바쁘디바쁜 나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고,
바쁜 와중에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된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결국엔 정신승리하며 나를 이해해 주며 그럴 수 있다고 잘했다고 정신승리하겠지만
지금 나의 미성숙하거나 부족한 부분들을 되짚어주셔서 자연스레 과거로 흘러가다 보니
내 마음에 아주 작았던 생채기가 생겼던 어떤 일이 있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내가 그 작은 상처들을 돌봐주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서 곯고 벌어졌던 것이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다가 어떨 땐 잘못 건드려 아프고 찜찜했던 것이다.

 

커피와 노트북

 

그 상처가 내 몸 어디에 생겼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위로가 되었고, 나에 대한 어떤 애틋함이 생겨 

좀 더 따뜻하게 이해해 주고 보듬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미세한 느낌만 있지만
조금 따뜻해진 공기 차이가 앞으로의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것 같은

여운이 많이 남는 첫 심리상담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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