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딘클리지였기에 가능한 사실적인 지질한 러브스토리
피터 딘클리지의 연기와 헤일리베넷 얼굴이 재미 포인트인 영화 시라노
(시라노연애 조작단 아닙니다)
조금은 낡은 영화일 수 있는 시라노
글쎄.. 아주 오랜만에 촌스러울 법도 한 클래식한 러브스토리를 보니
정말 지금까지도 지질한 나의 연애 행각 기가 스치듯이 지나가며
록산은 언감생심 시라노와 블루투스 동기화가 되었다지.
짝사랑 전문가였던 나로서는 너무 가슴 미어지고
오장육보 깊숙한 곳이 저릿해지는 그런 영화였다.
어디서 봤더라.. 강남CGV에서인가
나의 첫 혼영화로 본 시라노는 혼영화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다.
누군가랑 같이 가서 봤으면 시라노에 동기화된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록산같은 삶을 산 척했을 것이다..
록산같은 애들은 전교에 1명 있을까 말까했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모두 다 시라노이지 않았나, 하면 많은 논란이겠지만 사실이잖아..
강남 CGV는 스크린이 엄청나게 크지도 사운드가 엄청나게 짱짱하지도 않았지만
그 때문인지 더 귀를 열고 집중하게 되는 아주 잔잔한 뮤지컬 영화였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영상미,
그 시절 미술작품에서 튀어나온 듯한
록산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봤다지..
편지를 읽는 록산을 중심으로 세 남녀의 화면이 겹쳐지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시대의 건물과 록산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화려한 의상
그리고 종이가 휘날리는 영상미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어 눈도 깜빡이지 않은 듯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성당에서의 영상도.. 너무나 가슴 아팠다.
뻔하고 촌스러운 이야기임에도 내 안의 울림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집에 와서도 그 여운은 그치지 않아 나도 누군가에게 찐한 편지 한장 써보고 싶은 밤이다.
시라노가 정말 지질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마음이 아플 정도로 절절하도록 귀한 그 마음을 지질하게 느끼는
닳고 닳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한 시구절이 생각났기에 한번 가져와 적어본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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